
앤디 위어 - 프로젝트 헤일메리 감상
서론
나는 평소에 우주 SF 작품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꼭 소설이나 만화 같은 종이로 발행되고 있는 작품을 많이 읽어본 건 아니지만,
스타 시티즌 (2013~), 포탈 2 (2011) 과 같은 게임이나 마션 (2015)나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 (2017) 같은 영화도 정말 좋아한다.
최근에는 현실에서 또 한 번 우주개척에 역사적인 이벤트가 일어나고 있다.
나사와 그 외 주요국이 힘을 합쳐 달 뒤편에 유인 우주선을 보내 기지를 건설하겠다는 야심차고 대단한 계획이 실행되고 있다.
바로 아르테미스 계획이다.
내게 앤디 위어의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작품이었다.
<마션>의 작가라는 점도 컸고, 현실의 우주개발 분위기와 맞물려 더 흥미롭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에 이어 소설도 읽게 되었고, 이 글은 그 감상을 정리한 기록이다.
앤디 위어의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대한 감상을 남겨보고자 한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소설 서적 표지
감상
스포일러 주의
시작
처음에 이 작품을 읽기 시작했을 때 즈음에는 종이 책을 읽지 않은지 매우 오랜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진도가 매우 느렸었던 것 같다.
먼저 첫 장을 읽으면 주인공인 그래이스가 우주선에서 눈을 뜨는 시점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냥 눈을 뜨는 것이 아니라, 여기가 어디인지, 자신은 누구인지, 대부분의 기억을 잃은 상태로 깨어난다.
상상력이 부족했던 나는 여기서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실 영화를 봤었기 때문에 아예 모르진 않았다.)
주인공은 헤일메리호라고 하는 심 우주용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부터 11.9광년 떨어진 타우세티 항성계에 와있었다.
자신이 왜 와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주인공이 주변 환경과 자신의 처지를 하나씩 이해해 갈수록, 내 머릿속에 그 세계의 해상도도 점점 선명해졌다.
회상을 처음 했을 때는 당황스러웠다.
안 그래도 현재 주인공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해상도가 명확하지 않은 와중에
몇 번이고 과거 회상을 오갔으니 말이다.
이게 과거 회상인지 현재 상황인지는 한참을 읽고 난 뒤에 알기도 했다.
이 구간은 분량도 제법 길어서, 개인적으로는 가장 혼란스러운 대목이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중반
이후 외계 우주선을 타고 온 '로키' 를 만났다.
로키는 생김새도, 습성도, 사는 환경도 인간과 너무나도 달랐지만, 과학적으로 따져보면 공통점이 많았다.
로키와 만난 이후의 전개는 매우 흥미로웠다.
그전까지는 그래이스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기억을 되찾고, 현재의 위기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 중심이었다면
인간과 너무나도 다른 존재와, 어떻게든 서로를 이해하고 과학적, 수학적 지식을 통해 소통을 하며 협력해야만 하는 상황이
이 소설의 긴장감과 재미를 크게 끌어올렸다고 느꼈다.
이 과정에서 다소 어색한 배경 설정이 있기도 했지만, 어느 하나 과학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모두 과학적 이론에 기반한 설정이었기에, 하드 SF 덕후에게는 가능성을 느낄 수 있게하는 요소들이었다.
그렇다고 이야기의 모든 과정이 차갑고 딱딱한 계산의 연속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점도 좋았다.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들은 분명 과학적이고 논리적인데, 그 밑바탕에는 점점 상대에 대한 감정이 깔려 있다.
특히 좋았던 점은 로키가 단순히 “미지의 외계인”으로만 소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로키는 그래이스와 우정을 나누는 대상이자, 동시에 인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지성체로 다룬다.
그래서 로키와 그래이스의 관계는 버디물처럼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훨씬 더 낯설고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후반부로 갈수록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크게 보게 된 것은 거대한 우주적 위기도 물론이지만,
그 속에서 형성되는 관계와 선택의 무게와 그래이스가 기억을 찾는 과정이었다.
분명 처음에는 기억 회상의 과정이 혼란스러웠지만,
신기하게도 중반을 걸치고 나니 그래이스가 어떻게 타우세티까지 오게 되었는지, 스트라트가 이다음 무엇을 했는지가 더욱 궁금해졌다.
로키와 그래이스가 타우메바를 수집하고 개량하는 과정도 좋았다.
내가 "이렇게 하면 이런 일이 일어날텐데.."와 같이 걱정했던 일들이 정말로 일어났기 때문에
서로 머리를 맞대어 해결하는 과정에 나도 그 자리에서 같이 고민하고 있는 것은 몰입을 할 수 있었다.
결말
이 작품의 결말의 마지막 선택은 단순히 극적인 반전이나, 결말을 매듭짓기 위한 장치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이스가 기억을 되찾아 가며 어떤 사람인지 드러나고, 로키와 어떤 관계를 쌓아 왔는지를 생각하면
아주 자연스럽고도 설득력 있는 귀결처럼 보였다.
그 변화는 단순한 기억 회복이 아니라,
한 사람의 태도와 개인의 철학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초반에는 기억상실과 회상 구조 때문에 다소 헤맸고, 읽는 속도도 쉽게 나지 않았다.
하지만 로키가 등장한 이후부터는 과학적 문제 해결의 재미와 두 존재가 협력해 가는 과정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우주 SF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물론,
조금 긴 호흡으로 관계와 문제 해결을 함께 따라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충분히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는 로키를 만나기 전부터 이야기가 끝나기까지 계속 떠오르는 개념이 있다. 바로 판스페르미아설이다.
쉽게 말하면 생명의 기원이 하나의 행성 안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건너 다른 세계로 전달되었을 가능성을 말하는 가설이다.
작품 속의 아스트로파지, 타우메바, 에리디언, 인간을 보고 있으면 이 설정은 단순한 배경지식이 아니라,
서로 완전히 다른 존재처럼 보이는 생명체들이 사실은 같은 우주의 흐름 안에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감각을 준다.
인간과 에리디언은 너무나도 다른 존재처럼 보이지만,
결국 같은 우주 안에서 같은 기원을 나눌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이 둘의 만남을 단순한 조우가 아니라 어딘가 필연적인 사건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이 결국 “완전히 다른 존재와도 이해하고 협력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정서처럼 작동한다.
우리는 완전히 단절된 존재가 아니라,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을 뿐 결국 같은 우주의 연장선 위에 있는 생명체일지도 모른다는 감각 말이다.
그래서 후반부에 이를수록 이 소설은
인류를 구하는 임무에 대한 이야기이면서도, 동시에 서로 다른 존재가 어떻게 친구가 되어 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다.
이 작품은 하드 SF답게 끊임없이 문제를 던지고,
그 문제를 과학적으로 풀어 나가는 재미를 준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읽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것은 단지 영리한 해결 과정만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형성된 관계와 선택의 무게다.